으름

  살짝 웃는 듯 드디어 입이 벌어졌다. 여린 갈색빛 껍질이 뽀얗고 투명한 속을 드러낸다. 몽글몽글 말랑한 젤리 같은 덩어리가 보인다. 미끈하고 길게 생긴 감자 같기도 하고 홀쭉하게 야윈 키위 같기도 한 으름이 속을 보이고서야 제 이름을 찾는다.   지난 추석 성묫길에 높은 나뭇가지에 덩굴을 올리고 … Read More

창(窓) 

  엄마가 돌아가신 후 물건 정리를 했다. 부엌 곳곳에 소주병이 숨겨져 있었다. 싱크대 아랫단에서 양주병과 포도주가 진열된 찬장 구석진 곳에서, 간장병과 식용유 사이에서도 초록색 병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기제사가 끝나고 시누이와 시고모님의 거침없는 입담이 지나간 후에 돌아서서 몰래 찾아들었을 눈물 한 방울 소주 한 모금. 서울에 … Read More

코뚜레 없는 소가 되어

  나는 오늘도 침대에 누워 새로운 아침을 맞는다. 일본의 100세 여류시인 시바타 도요는 ‘난 괴로운 일도 있었지만/ 살아 있어서 좋았어!’라고 감사의 노래를 하였다. 나도 침대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햇볕이 시나브로 찾아드는 거실에 홀로 앉아 조용한 아침을 맞는다.   안방에는 고 2 작은아들이 잠들어 있다. 아들은 휴대폰을 끌어안고서 침대에 누워 …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