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필
- 충남 부여 출생
- 2018. 소방청 국민생활안전수기 공모전 동상 수상
- 국립국어원 국어문화학교 국어전문교육과정 수료
- 당진문화예술학교 수필문학반 수료
- 현, 계룡시소방서 현장대응단 근무
작품
- 코뚜레 없는 소가 되어 (제14회 사계 김장생 신인문학상)
누군가의 인생에 의미와 도움 되는 글 쓰고 싶어
(제14회 사계 김장생 신인문학상 당선 소감)
바다는 성난 파도를 일으키며 거칠게 뱉어 내지만 산은 모두를 품어 낸다. 나는 사십 대 격랑의 세월을 말없이 품어주는 민족의 영산(靈山) 계룡산과 함께 보냈다. 산은 세상에 상처 입은 내 마음을 모두 품어 줄 것만 같았다. 계룡시에 터를 잡고 산지도 어언 10여 년이 다 되어 간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 듯 아픈 상처는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내가 처음 계룡시에 왔을 때 나는 모든 것을 신께 기도하며 살았다. 신께서 나를 좀 도와달라고 목이 터지라 외치며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신의 뜻대로 하소서!’하고 작은 목소리로 기도를 드린다. 그것을 깨우치는데 10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나는 스스로의 호를 사강(思江)이라 지었고, 앞으로의 삶은 강물이 흐르듯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신의 뜻대로 살 것이다.
젊어 세상에 상처 입은 마음은 아물어도 흉터를 남기지만, 10년이란 세월 속에 서서히 잊혀 갔다. 계룡산 바위가 이마를 넓게 드러낼수록, 나도 나이가 들면서 얼굴에는 고랑이 생기고 머리에는 흰 설이 내렸다. 그동안 내 마음의 상처는 극복되고, 아이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 인생의 작은 파고를 넘어 성장하였다. 그리고 나는 어느 날 아침 문뜩 코뚜레 없는 소가 되었음을 알았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채 3년이 되지 않는다. 당진 문화예술학교에서 수필 문학반 1기 수강생이 되면서 부터이다. 이종미 교수님을 만나 기초도 없이 혼자서 끄적거리던 잡문이 수필문학으로 변모되기 시작하였다. 격물치지(格物致知)도 모르고, 수필의 말단도 모르고 쓰던 글이 소방청 주관 전국생활안전 수기 공모전에서 동상을 받는 영예도 얻었다.
글을 써가면서 느끼지만 ‘펜은 칼보다 무섭다.’란 말을 실감한다. 글이란 것이 참 무섭고 글쓴이는 책임감을 가지고 써야 한다. 인터넷에는 카더라 통신이 난무하고 익명이라는 이유로 마음대로 써 젖히는 사람들이 많다. 연예인이나 특정인을 대상으로 불특정 다수가 마녀사냥을 하듯이 악플을 써 대고 있다. 얼마 전에 끝난 지방선거에서도 고질적인 네거티브 선전은 만연하였다.
조선시대 예학의 태두로 평가되고 있는 사계 김장생 선생의 ‘예학론’은 임진란 이후 혼란해진 국가기강을 바로잡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통을 바르게 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고 들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사계 김장생 선생의 ‘정통주의적 예학론’의 문학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권위 있는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어 더욱 의미가 있고 개인적으로는 큰 영광이며 기쁨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남을 배려하는 최소한의 예(禮)를 갖추고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으면 한다. 한 줄의 글이 한 사람의 인생에 의미가 되고 도움이 되는 그런 글이 많았으면 좋겠다. 글을 쓰는 사람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이진복”에 대한 1개의 생각